와인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알코올과 시간, 기술이 어우러진 예술이다. 포트와 셰리처럼 알코올이 강화된 주정강화 와인, 그리고 샴페인처럼 기포가 살아 있는 스파클링 와인은 각기 다른 기술과 역사, 맛의 철학을 지닌 존재이다. 이 글에서는 발효 기술의 정수인 주정강화 와인과 스파클링 와인의 세계를 함께 살펴볼 것이다.
대다수 와인의 알코올은 자연 발효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증류주를 섞어 담은 '주정강화' 와인도 몇 가지 있는데, 대체로 순수 알코올에 가까운 그랍파와 비슷한 식의 비숙성 포도 브랜디를 섞어 넣는다. 주정강화 와인은 알코올 함량이 보통 와인의 15~20% 대보다 높다. 그래서 향이 강하고 무게감도 더 묵직한 편이라 적은 분량씩 서빙된다. 이런 주정강화 와인은 화이트와 레이드 모두 있지만, 달콤한 스타일이 가장 인기가 있다.
1. 주정강화 와인에 얽힌 역사 한 토막
주정강화 와인은 사람들이 그 맛을 좋아하는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남은 역사적 유물이다. 그런데 원래 와인 통 안에 증류주를 넣었던 것은 와인메이커들이 아니라 와인 상인들과 선장들이었다. 배에 싣기 전에 방부제를 넣었던 것이다. 생선을 소금에 절이거나 야채를 피클로 만드는 것처럼 당시엔 부패를 막기 위한 조치들이 장거리 운송을 위해, 특히 더운 기후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지던 일이었다. 이 점으로 미루어 보면 포트와 셰리에서부터 마데이라와 마르살라에 이르기까지 최고 인기 주정강화 와인들 모두가, 따뜻한 기후의 항구들을 거점으로 삼아 세계적 해상제국에 와인을 공급하는 과업을 맡았던 영국 상인들의 혁신이 빚어낸 결과였음이 이해가 된다. 당시 알코올을 첨가해 와인을 안정화시키는 관행을 품질 향상을 위해 와인 양조술에 접목시켰던 곳은 이들이 소유하거나 감독하던 와이너리들이었다. 그 후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의 빈트너들도 이 선계를 따랐다.
2. 셰리 양조법 : 발효 후에 주정강화
이 오래된 와인 양조 방식에는, 거의 예외 없이 첫 단계로 드라이할 정도로 발효시킨 화이트 와인부터 빚는다. 그리로 이렇게 만들어진 베이스 와인에 증류주를 넣어 주정을 강화시킨 후에 숙성시킨다. 이런 셰리 와인은 나중에 가당을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어서 피노 셰리같이 지극히 드라이한 와인에서부터 크림 셰리처럼 아주 달콤한 와인까지 맛이 다양하다. 셰리 스타일 와인은 대개 강한 알코올과의 균형을 위해 풍미를 증진시킨다. 셰리 양조법으로 만들어지는 와인들로는 다음의 예가 있다.
1) 스페인의 셰리
강렬한 편인 갈색 셰리의 경우엔 산화 숙성을 통해, 또는 라이트 바디에 옅은 색의 피노 셰리의 경우엔 플로르라는 특별한 효모로 숙성시키는 방식을 통해 풍미를 증진시킨다.
2) 포르투갈의 드라이한 마데이라
드라이한 세르시알(Sercial) 마데이라와 베르델료(Verdelho) 마데이라의 경우, 일명 마데라이제이션이라는 높은 온도에서의 산화 숙성을 통해 풍미를 증진시킨다.
3) 이탈리아의 드라이한 베르무트
사실 와인 상품보다는 거의 혼성주로 팔리는 베르무트는 허브를 비롯한 여러 식물을 우려내 풍미를 가미하는 주정강화 와인이다.
3. 포트 양조법 : 발효 중에 주정강화
일명 뮈타지(mutage)라고 불리는 이 기술은 보다 최근에 이루어진 혁신으로, 화이트와 레드 모두 가능하지만 달콤한 와인만을 빚어낸다. 증류주의 첨가 시기가 훨씬 빨라서 발효 중에 넣는데, 효모는 알코올이 15% 이상인 상태에서는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브랜디를 첨가하면 발효 과정이 갑자기 중단되면서 달콤한 디저트 오인의 맛이 보장된다. 이 포트 양조법으로 만들어진 와인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포르투갈의 포트
포트는 대다수가 레드 와인이며 주로 두 가지 스타일로 나눈다. 우선 황갈색의 토니 포트는 통 숙성을 거치면서 견과류 풍미를 띠며, 보다 클래식 스타일인 자주색 포트는 산화로부터 보호되어 잼 같이 졸인 과일 향과 생생함이 간직된다.
2) 프랑스의 뱅 두 나튀렐
화이트 뮈스카는 더 달콤한 맛이 나고 어릴 때 마시는 반면, 바늘 같은 그르나슈 베이스의 레드는 더 드라이한 편이며 대개 통 숙성을 거친다.
3) 스페인의 비노스 데 리코르(Vinos de Licor)
셰리의 나라에서 생산된 안달루시아의 모스카텔과 페드로 히메네스는 햇볕에 바싹 말린 청포도를 원료로 사용하는 주정강화 와인이다.
이산화탄소와 알코올은 발효의 부산물이라 모든 와인은 어느 한 단계에서 거품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 거품은 사라지도록 방치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약간의 스파클(거품)이 함유되어 더 좋은 맛을 내는 와인들도 있다. 빈트너들은 천연 탄산가스를 잡아두기 위해 표준적인 와인 양조 과정에 약간의 수정을 가해, 최종 발효 단계에서 와인의 거품을 가둬둘 수 있는 밀폐 용기를 사용한다.
4. 전통적 방식
상파뉴에서 개척된 전통적 방식은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고급 와인의 양조에 활용되고 있는데, 이는 그 기분 좋은 결과 덕분이다. 다시 말해 미세하고 크림처럼 부드러운 거품과 가벼운 와인의 상쾌함, 깊고 진한 와인의 풍부함이 한데 어우러진 풍미를 선사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렴한 와인은 전통적 방식을 수정하거나 2차 발효를 생략하는 등 시간이 덜 드는 방식을 활용한다.
1) 베이스 와인 만들기
낮은 알코올의 드라이한 스틸 화이트 와인을 만들 때는 대개 덜 익은 적포도와 청포도를 섞어서 만든다.
2) 병입 및 가당
베이스 와인을 병에 담아 일정량의 당분과 효모를 첨가한 후 단단히 밀봉한다.
3) 2차 발효
효모가 당분을 먹으며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고, 이때 이산화탄소는 빠져나오지 못해 탄산가스 형태로 병 속에 그대로 갇힌다.
4) 앙금 숙성
발효 후에는 용도를 다한 효모의 침전물이 생기는데, 이 앙금과 함께 와인을 숙성시키면 빵 반죽 풍미가 더해지면서 와인의 질감이 풍부해진다.
5) 침전물 제거
6개월에서 10년 사이의 숙성을 거친 후, 병의 위아래를 거꾸로 뒤집는 과정과 냉동 과정을 통해 침전물을 제거한다.
6) 와인 보충과 가당
침전물 제거로 잃은 양만큼 와인으로 보충해 채워주고, 와인의 극도로 드라이한 맛을 상쇄하기 위해 사탕수수 설탕을 첨가한다.
5. 달콤한 맛을 지칭하는 용어
스파클링 와인에서 가장 헷갈리는 부분 한 가지를 꼽자면 바로 달콤한 맛을 지칭하는 라벨 용어들이다. 사실 프랑스의 샴페인은 처음 인기를 끌게 되었을 당시만 해도 요즘의 청량음료만큼이나 많은 당분이 가당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더 드라이한 스타일을 찾자 빈트너들이 당분을 덜 첨가하고, 병의 라벨에는 각각 하프드라이와 드라이의 의미로 '데미섹'이나 '섹'이라는 명칭을 넣었다. 그러다 수출시장이 그보다 더 드라이한 와인을 찾자 '드라이보다 더 드라이한'을 의미하는 새 명칭을 만들어내야 했고, 그렇게 해서 달콤함이 거의 전무한 풍미를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가 '사납고 거칠다'는 뜻의 '브뤼(Brut)'였다.
진정한 브뤼는 단맛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여야 브뤼 와인에 해당되며 현대식 고급 스파클링 와인이 브뤼 와인의 주를 이룬다. 헷갈리게도 '엑스트라 드라이'라는 용어는 글자 그대로 더 드라이한 와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브뤼의 기준보다 더 달콤한 정도를 가리킨다.
6. 마무리하며 : 와인의 다양성, 그 뒤에 숨겨진 과학과 철학
와인은 단순히 포도를 발효한 음료가 아니다. 그 속에는 수백 년에 걸친 인류의 지식과 문화, 그리고 자연과 기술의 정교한 균형이 녹아 있다. 주정강화 와인은 선박과 제국의 역사 속에서 탄생했고, 스파클링 와인은 전통과 혁신이 만나는 곳에서 진화해 왔다.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한 잔의 와인 뒤에는 수많은 과정과 고민, 그리고 기후와 시간의 흔적이 깃들어 있다. 이 글을 통해 독자 여러분이 와인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고, 다음 잔을 더욱 풍요롭게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포트 와인의 깊은 단맛, 셰리의 드라이한 미묘함, 샴페인의 미세한 거품까지. 이제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함께 음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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