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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와인의 맛을 결정짓는 숙성의 비밀

by wine professional 2025. 7. 11.

포도의 숙성도는 와인의 맛과 향, 알코올 도수까지 결정짓는 핵심 요소이다. 와인의 숙성 개념부터 알코올 도수로 풍미를 예측하는 법까지, 와인 선택이 쉬워진다. 와인 세계의 원리를 설명하거나 와인별로 어떤 맛이 날지 미리 가늠하는 측면에서 볼 때, 숙성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개념이다.

 

 

와인의 숙성 과정

 

1. '설익은' 맛부터 뛰어난 맛까지

숙성은 과일 발육에서의 최종 단계다. 즉 신선하고 먹음직스러운 맛이 나기에 적절한 균형이 갖추어져 이제 수확해도 될 만한 시기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숙성은 과일을 딱딱하고 시큼한 미완숙의 단계에서 달콤하고 과육 풍성한 단계로 변화시켜 주며, 이때 그 과일의 빛깔도 초록색에서 특유의 적절한 색으로 변해간다. 우리는 덜 익은 과일의 맛을 말할 때 '설익은'이라는 단어를 쓴다. 다 익어 달콤한 맛을 낼 때도 여전히 초록색인 그래니 스미스 애플이나 청포도 같은 과일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무튼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햇빛으로부터 에너지원을 받으므로, 어떤 과일이든 그 숙성도는 수확 전 마지막 몇 주 동안 얼마나 많은 햇빛을 받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2. 숙성의 미묘한 차이들

와인메이커들에게는 딱 맞는 적절한 순간에 포도를 따는 일이 정말로 중요하다. 그 순간에 자신들의 원료로 쓰일 포도 풍미의 특징에 그대로 자물쇠가 채워지기 때문이다. 수확 시기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는 요소는 당분 함량인데, 당분 함량에 따라 와인의 잠재적 알코올 강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려해야 할 요소들은 그 외에도 여러 가지다. 포도의 산도, 풍미 성분, 타닌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엄밀히 말해, 와인메이커들 사이에서는 '완숙'에 대한 보편적 정의가 없다. 각 포도 성분이 지리, 기후, 농경술상의 변수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가령 독일의 서늘한 모젤 지역에서 재배되는 리슬리의 경우엔 포도의 당분 함량이 18% 정도밖에 안 되어도 완전히 익은 것으로 치는 반면, 캘리포니아의 카베르네 소비뇽의 경우 당분이 24% 이하면 무조건 덜 익은 것으로 친다. 와인메이커들은 원하는 양조 스타일에 따라 수확을 더 서두르거나 늦추기도 한다. 화이트 와인이나 스파클링 와인을 빚을 경우 상쾌한 산도를 지키기 위해 조기 수확한다든가, 레드 와인을 빚을 경우 포도껍질의 빛깔과 풍미를 발전시키기 위해 더 기다렸다가 수확하는 식이다.

다행스럽게도 와인 애음가들로선 숙성에 대해 와인메이커들처럼 미묘한 차이를 따질 필요가 없다. 와인을 스타일에 따라 알아보려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유용한 일반화를 세우는 편이 더 바람직하다. 즉 리슬링이나 프로세코처럼 서늘한 기후 스타일의 가벼운 와인용의 포도는 덜 익은 상태로 쓰이고,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포트처럼 온화한 기후 스타일의 묵직한 와인용 포도는 더 숙성된 상태로 쓰인다고 생각하면 된다.

 

와인을 음미하는 커플

 

3. 풍미의 부스터

포도는 햇빛을 많이 받을수록 더 숙성되며, 이렇게 숙성된 포도는 와인의 감각적인 효과를 끌어올린다. 더 달콤한 포도일수록, 발효를 드라이한 수준까지 이어갈 경우 알코올 도수가 더 높은 와인이 만들어진다. 또 이런 와인은 입안에서 더 묵직하게 느껴지며 풍미 또한 더 풍만하다. 숙성된 포도일수록 더 강한 맛을 부여해 주는데, 이는 방향족 에스테르 같은 풍미 성분이 더 많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지만, 알코올이 쉽게 증발하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알코올이 조금만 더 있어도 낮은 온도에서조차 와인에서 향과 풍미의 부스터 역할을 해준다. 향수에서의 알코올 역할과 같다. 또한 포도의 숙성도가 더 높으면 레드 와인의 빛깔이 더 짙어지기도 한다.

 

4. 알코올이 알려주는 이야기

포도의 단맛이 하나도 남겨지지 않은 드라이 와인의 경우엔, 숙성과 알코올 함량이 거의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가지며 거의 모든 와인 라벨에 알코올 함량이 표기되기 마련이다. 알코올 함량 13.4%가 표준이라는 점만 알아 두어도 어떤 와인이 무슨 맛일지에 대해 많은 것을 예측할 수 있다. 가령 알코올 함량이 높은 와인은 보통 와인보다 마우스필이 묵직한 편일 뿐만 아니라, 높은 숙성 때문에 톡 쏘는 신맛이 덜하며 향도 더 강렬하고 과일 풍미가 짙다. 알코올 함량이 낮은 드라이 와인은 대부분이 이와는 정반대여서, 가볍고 부드러우며 허브 풍미가 짙은 편이다.

알코올 함량의 예지력은 이게 다가 아니다. 전적으로 인간의 통제 하에 있는 몇몇 와인 요소들, 이를테면 오크 풍미나 탄산가스 함유 정도 등의 요소들은 숙성도의 높고 낮음에 관련되어 있으며, 따라서 알코올 함량과도 관련성을 갖는다. 가령 와인의 오크 풍미가 높을 가능성은 알코올 함량이 평균보다 높을 경우 크게 높아지는 반면, 알코올 함량이 평균보다 낮을 경우 탄산가스가 함유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예외는 있어서, 중간대인 13~14%의 알코올 함량 부문에서 와인 품질의 예측력이 가장 떨어진다. 하지만 그 예측의 패턴은 와인 쇼핑에서 유익한 길잡이가 되어줄 만큼 잘 들어맞는 편이며, 알코올 함량이 표준 수준에서 벗어날수록 그 예지력은 더 탄탄하다.

 

5. 마무리

와인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숙성’은 핵심 키워드이다. 포도가 얼마나 잘 익었느냐는 와인의 맛, 향, 질감뿐만 아니라 알코올 도수와 색감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와인 라벨의 알코올 함량만으로도 어느 정도 와인의 풍미를 예측할 수 있으며, 높은 도수일수록 묵직하고 향이 풍부하며, 낮은 도수일수록 상쾌하고 가벼운 인상을 준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 숙성과 알코올 함량이라는 이 두 가지 지표는 와인을 고를 때 강력한 힌트가 되어 준다. 이제부터는 단순한 브랜드나 산지 외에도 ‘숙성’이라는 관점에서 와인을 즐겨보길 바란다. 훨씬 풍부한 맛의 세계가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