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은 와인에 대한 느낌이 맛을 보는 환경에 쉽게 좌우된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최대한 객관적이 되려고 애쓰는데, 특히 일관된 시음 절차를 정해 놓으면 비교 시음에 적합한 토대를 마련하는데 유용하다. 이때의 목표는 와인의 감각상의 특징들, 즉 빛깔, 향, 풍미가 일으키는 효과를 따로따로 분리하고 증폭시키면서 그 와인만의 특성을 구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려면 잔에 와인을 직접 따른 후, 다음과 같은 순서에 따른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1. 눈으로 관찰하기
와인이 화이트 와인인가, 로제(핑크빛) 와인인가, 레드와인인가? 시음 장소가 조명이 밝은 환경이라면 종이 같은 흰색의 표면 위에 와인 잔을 대고 유심히 살펴보면서 어떤 스타일일지 암시해 줄 만한 유용한 단서를 찾아본다. 빛깔이 얼마나 짙은가? 혹시 숙성 중에 갈변이 일어난 징후가 보이지 않는가?
2. 원을 그리듯 와인 잔 돌려보기
스월링(swirl)은 냄새를 더 잘 맡기 위한 것으로서, 이는 스테레오 오디오의 볼륨을 높이는 이치와 흡사하다. 스월링으로 와인 잔 안에 방향물질이 모아지면 와인의 향이 더욱 강렬해진다. 이는 스월링으로 와인의 표면적이 늘어나면서 기화와 방향성의 강도가 끌어올려지기 때문이다.
3. 와인의 향을 깊이 들이마시기
향은 와인의 시음에서 중요한 부분인 만큼 맛을 보기 전에 와인의 향을 맡는 단계는 꼭 필요하다. 와인 잔에 코를 바짝 들이대고 두세 번 정도 깊이 향을 들이마시면서 그 향에 대해 천천히 생각해 본다. 향은 얼마나 진한가? 뭔가 연상되는 것은 없는가? 그 향에서 과일 향이나 야채 향이 떠오르진 않는가? 허브 향이나 향신료 향은 어떤가? 토스트(구운 빵) 같은 오크 향이 느껴지지는 않는가?
4. 와인을 한 모금 머금어보기
평상시에 홀짝이는 양보다 조금만 더 많이 들이마신다. 이렇게 마신 와인은 바로 삼키지 말고 혀, 볼 안쪽, 입천장의 표면에 골고루 덮이도록 입안에 3~5초 정도 머금고 있는다.
5. 입안에서 빙 굴려보기
입안을 헹굴 때처럼 와인을 머금고 입안에서 굴려보면 미각의 감각이 극대화된다. 표면 접촉이 높아지면서 미각과 촉감이 더 강렬해지는 것이다. 또한 와인을 데워주기도 한다. 체온으로 와인의 기화가 촉진되면서 후각 신경을 위해 아로마를 모아주는 것이다.
6. 와인 음미해 보기
와인의 풍미는 삼키고 난 뒤에도 바로 사라지지 않는다. 1분 이상 그 뒷맛이 남아서 감각상의 특징을 평가해 보고 개인적 판단을 내려볼 만한 틈을 준다. 이때 와인 시음의 체크리스트를 체크하며 스타일상의 특성을 구분해 보면 된다. 그 와인이 마음에 드는가? 와인만 단독으로 마시는 편이 좋겠는가 음식과 곁들여 먹는 편이 좋겠는가? 다시 구매하고픈 생각이 드는가?
많은 와인 전문가들이 대규모 시음회에서 와인을 뱉곤 하는데, 대다수 사람들의 눈에는 이런 모습이 거북하게 보일 것이다. 입안에 넣었던 것을 뱉는 행위는 어떤 경우든 무례하다고 여기는 경향 탓이다. 하지만 하나의 직업으로 와인을 비판적으로 맛봐야 하는 이들로서는 와인을 뱉을 수밖에 없다. 그래야 알코올 흡수를 최소화해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규모 와인 시음 행사나 와인 시음장, 그리고 강의에서는 와인을 뱉는 그릇이 거리낌 없이 사용된다.
새로 맛보는 와인 하나하나를 머릿속에 데이터베이스화해야 하는 입력자료라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지금껏 맛봐온 다른 와인들과 비교해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어떤 카테고리로 분류할지 정해질 것이다. 시음의 마지막 단계는 와인을 음미하면서 상당히 객관적인 와인의 주요 특징들을 평가하고 기억 속에 남겨놓는 일이다. 이때 감각상의 체크리스트를 사용하면 중요한 부분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우리의 5대 감각 중 네 가지 감각은 와인의 다양한 특성을 평가하는 데 도움을 준다. 와인 시음에서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하는 감각은 딱 하나, 청각뿐이다. 아래의 표를 통해, 와인의 특성별로 저, 중, 고 중에서 어느 단계에 해당되는가에 따라 어떤 묘사어를 쓰는 것이 적절한지 참고해 보기 바란다.
감각 | 특성 | 저 | 중 | 고 |
시각 | 빛깔 | 화이트 | 핑크 | 레드 |
빛깔의 농도 | 옅은 | 적당한 | 짙은 | |
미각 | 당도 | 드라이한 | 살짝 달콤한 | 아주 달콤한 |
산도 | 약간 시큼한 | 새콤한 | 톡 쏘는 | |
후각 | 과일 향 | 순한 | 그윽한 | 볼드한 |
오크 향 | 오크 향이 느껴지지 않는 | 가벼운 오크향 | 강한 오크향 | |
촉각 | 바디 | 라이트 | 미디엄 | 헤비 |
타닌 | 실크 같은 | 벨벳 같은 | 거친 | |
탄산가스 | 스틸 | 스프리치 | 스파클링 |
와인의 시음에 관한 한 모든 감각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후각이다. 코를 대고 냄새를 맡지 않더라도 와인을 한 모금 머금는 순간, 강렬히 발산되는 아로마를 느끼게 된다. 우리는 이를 풍미라고 인식하며 와인의 맛으로 받아들이지만, 사실 우리가 풍미라고 인식하는 것의 대부분은 후각적 자극, 즉 냄새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향기와 풍미 사이에 실질적인 차이는 없다. 단지 코로 들어오는 방향만 서로 다를 뿐이다. 말하자면 위쪽 비강의 후각신경은 냄새가 외부로부터 코로 들어오면 향기로 인식하지만, 똑같은 냄새가 코와 입을 연결하는 내부 통로를 통해 코에 이르면 풍미로, 즉 음식이나 음료의 맛이라고 인식한다.
우리가 혀와의 접촉을 통해 맛보는 와인의 특징은, 달콤함과 시큼함 같은 소수의 기본적인 특징에 불과하다. 하지만 와인 속의 휘발성 아로마 성분이 후각신경에 이를 때, 우리의 후각은 향기인 동시에 풍미인 보다 복잡한 와인의 특징들을 훨씬 더 다양하게 감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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